- <자본론> 1권: 마르크스 자신이 출판
- <자본론> 2권과 3권: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원고를 정리해 발행
- 새로운 사회에 관한 내용은 책 전체 분량 중 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 자본주의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되는가에 관한 연구가 99.5퍼센트
-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을 강조했다.
- 마르크스는 경제를 구성하는 생산·교환·분배·소비 영역 가운데 생산을 가장 중시했다.
-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히는 것 (서문)
-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이윤 획득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
-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 (잉여노동)
- 제1권(자본의 생산과정): 자본이 어떻게 이윤을 생산하는가, 자본의 축적과정이 어떻게 자본관계(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가
- 제2권(자본의 유통과정): 자본가가 투자한 화폐가 어떤 과정으로 증식하는가
- 제2권 제3편: 1년동안 생산된 상품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판매되는가(재생산표식)
- 제3권(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자본가 계급 전체가 노동자 계급 전체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가 개별 자본가들 사이에 평균이윤으로 분배되는 것, 잉여가치가 산업자본가·상업자본가·금융자본가·지주 사이에 분배되는 것을 이론적으로 해명
- <자본론> 제1권의 내용에 집중
- 경제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자본론> 제3권의 공황이론을 설명
- <자본론> 제3권의 금융자본과 상업자본에 관한 이론을 설명
- 2008년 9월 세계 금융공황과 산업공황으로 주류경제학이 1980년대부터 내세운 신자유주의는 신뢰 상실
- 주류경제학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자본가 계급의 상식과 이데올로기를 정교한 논리나 수학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속류경제학
- 주류경제학의 위기는 1960년대 후반과 1974년의 공황에서도 드러났다.
- 1968년 프랑스 민중운동, 학생들의 학교 점거,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와 파업 확대 등
- '인간의 소외'가 주요한 토론 주제로 등장: '대중 속 개인의 고독' -> '공장 안의 노동자들의 종속'
- 대학 주류경제학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없는 것으로 가정하였으므로 소외 문제를 다룰 수 없었다. 그리고 이윤이나 지대의 원천에 관해 연구할 수 있는 분석도구도 없었다.
- 1960년대말 유럽 모든 대학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사회과학자들이 학생들이 수업 거부와 사퇴 요구로 대학을 떠나야 했다.
- '스태그플레이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주제
- 케인스주의적 재정금융 확대정책은 실업을 감축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물가만 상승시켜 신뢰 상실
- 극우파 프리드먼의 '통화주의'가 경제학계를 지배: 실업 감축보다 인플레이션 억제가 경제정책 1순위라고 주장. 불황에서도 긴축 정책 채택. 통화량 증가의 주 원인이이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조합 임금 인상이라고 주장. 자본가들에게 지지받음.
- 1979년 대처 수상 당선,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으로 '신자유주의'가 실시
- 마르크스의 일생
- 출생: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
- 사망: 1883년 3월 14일, 영국 런던
-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
- 1842년(24세): <라인신문> 편집인이 되었음. 엥겔스 등 '청년헤겔파'가 자주 기고. 프러시아 정부의 폐쇄 명령으로 편집임 사임.
- 1844년(26세): 파리에서 혁명적 민주주의자인 아르놀트 루게와 함께 <독불연보> 창간. 여기에 엥겔스의 논문 <정치경제학 비판 개요> 실림. 루게의 혁명적 민주주의와 자신의 공산주의 사상의 차이로 루게와 결별
- 1844년 8월 ~ 12월: 파리에 머문 엥겔스와 온갖 이론적·현실적 문제를 논의하며 서로 의견이 일치함을 확인. 이후 정치적 동반자가 됨.
- 1845년 엥겔스: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저술.
- 1844년 마르크스·엥겔스: <신성가족> 저술. 청년헤겔파 브루노 바우어 비판하는 내용.
- 1845년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저술. 최초로 역사적 유물론을 전개함.
- 1848년 마르크스(29세)·엥겔스(27세): <공산당선언> 완성.
- 1843년: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저술. 국가(정부)와 관료가 사회의 '일반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비판.
- 1844년: <경제학·철학 초고> 저술.
- 1847년: <철학의 빈곤> 저술.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 비판.
-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이 터져 유럽 전체로 번지자, 쾰른으로 돌아가 <신라인 신문>을 창간.
- 1849년: <신라인 신문>으로 인해 프러시아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음. 영국 런던으로 망명.
- 1851년(33세): 대영박물관에서 경제학 연구 시작 -> 이 연구는 나중에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으로 귀결됨.
- 1867년: <자본론> 제1권 독일어 제1판 발간.
- 1885년, 1894년: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자본론> 제2권, 제3권을 발간.
- 1857년 ~ 1858년: <그룬트리쎄>(일명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자본론>에서 다루려 한 항목을 미리 뽑아 재구성.
-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화폐에 관한 내용.
- 1861년 ~ 1863년: <잉여가치학설사> 이윤·지대 등의 원천을 조사하기 위해 경제학자 199명의 저작을 읽고 논평. 출판용이 아니라 학습용이었다.
-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덕목은? 단순성
- 아버지가 생각하는 행복은? 싸우는 것
- 아버지가 생각하는 불행은? 굴복하는 것
-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
- 제1인터내셔널(1864년 창립) 운영에 깊이 관여
- 1871년 파리 노동자 정부(파리코뮌) 지지
- 국제노동운동에서 아나키즘(바쿠닌주의, 프루동주의)과 노동조합주의를 물리치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정치투쟁, 노동자 정당 건설, 정치권력의 장악 등을 강조.
- 독일사회주의노동당 강령 초안 비판(<고타 강령 초안 비판>).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능력에 따라 노동, 노동에 따라 분배)와 높은 단계(능력에 따라 노동, 필요에 따라 분배) 주장.
- 쁘띠부르주아적 뒤링 박사 비판(<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반듀링론>)), 이후 <사회주의: 공상에서 과학으로>로 다시 출간
-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일이다."
-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연구방법은 인간의 본성에 의거하는 부르주아 경제학과 전혀 다른 과학적인 방법.
- 역사발전단계설: 원시공산 사회 -> 노예 사회 -> 봉건 사회 -> 자본주의 사회 ->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
- 마르크스는 이후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했다.
- 역사발전단계설은 유럽에 국한되는 것이며, 모든 나라가 반드시 따랐거나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 사회주의 사회에서 인류 역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적 소유로 인한 인류의 계급투쟁이 끝난다.
- 생산의 목적이 자본가 계급의 이윤 획득: 생산의 목적이 인간의 필요가 아님. 실업 발생. 노동시간·노동강도 증대.
- 생산의 무계획성: 과잉생산·과소생산이 발생. 신상품·신생산방법의 경쟁적 도입으로 유행·혁신에 도태된 자본가의 파산. 불확실성·불안정성.
- 몰락 이유: 경제 위기·공황, 자본가 계급·노동자 계급의 대립
- 생산양식: 역사상의 구체적 사회를 단순화시켜 사회의 본질과 기본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개념
- 생산양식의 구성: 경제적 토대(생산력 + 생산관계) +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 생산력: 생산방식(어떤 노동수단으로 어떻게 생산하는가) + 과학기술의 발달 수준 + 노동자들의 숙련과 지식 수준 등
- 생산관계: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 누가 생산물을 처분하는가, 생산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위계질서·계급관계에서 생산하는가 등
- 교환관계: 생산물이 유통하는 형태. 보통 생산관계 안에 포괄됨.
-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정치·법률·사상·문화 등
- 유물사관의 공식: 한 사회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이 발전하도록 촉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지한다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서 일어나 낡은 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낸다. (TODO: 이런 계급투쟁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서 일어난다는 말이 옳은가?)
- 자본주의에는 자본가 계급과 임금노동자 계급 외에도 다양한 계급이 존재한다.
-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 계급과 임금노동자 계급 사이의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관계에 의해 지배된다.
-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이 두 계급과 기타 다양한 계급 사이의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관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사회구성체)'이라고 부른다.
- 구조: 자본가 계급·임금노동자 계급 사이의 착취관계, 자본가 계급·지주 계급 사이의 잉여가치의 분배
- 발전: 자본이 축적됨에 따르는 계급 사이의 착취관계와 분배관계의 변화, 경제 위기와 공황
- 산업자본가가 고용한 임금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조한다.
- 노동자가 만든 부가가치는 자신이 받는 '임금'과 산업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잉여가치'로 이루어진다. (착취)
- 산업자본가는 이 '잉여가치'의 일부로 은행(금융자본가)에서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상품 판매를 맡은 상인(상업자본가)에게 '상업이윤'을 지급하고, 공장 부지를 빌려준 지주에게 '지대'를 지급한다. 그리고 '잉여가치'에서 남은 부분이 산업자본가의 '기업이윤'이 된다. 이것이 임금·이자·상업이윤·지대·기업이윤 사이의 경제적 상호관계다.
- 이 경제적 상호관계에서 정치적 투쟁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 잉여가치를 서로 나누어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자본가·상업자본가·지주·산업자본가 사이에 대립과 투쟁이 발생한다. 하지만 부가가치 중 임금을 축소하고 잉여가치를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 모두가 합심하여 노동자 계급과 대립하고 투쟁한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를 완전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계급 사이 관계뿐 아니라 국가·대외거래·세계 경제에 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연구를 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사망했다. 힐퍼딩의 <금융자본>과 레닌의 <제국주의>가 국가·대외거래·세계 경제를 다루고 있다.
- <자본론>에는 자본가·지구·임금·노동자 계급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가장 기본적인 지식만 다뤄져 있고, 구체적 형태의 자본, 자본주의적이 아닌 형태의 농업, 노동자 계급의 투쟁방법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 <자본론>에는 사회주의 등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다. 단, 자본주의 사회가 자신의 '경제적 운동법칙'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분석돼 있다.
-
<자본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개인행동에 일정한 제약을 가한다고 분석.
-
부르주아 경제학: 사회가 수많은 인간이 단순히 모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과 행태를 알아야 사회 구조와 발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본성과 행태를 가졌다고 가정한다. 인류 역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하나의 사회만이 존속해왔고 앞으로도 자본주의 사회가 인류 역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종속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 인간, 사회와 아무런 관련을 가지지 않는 순수한 원자론적인 개인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
부르주아 경제학은 인간을 '경제인'으로 가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이론을 만들어내는 오류를 범한다.
-
부르주아 경제학은 경제의 역사(경제사)와 경제학의 역사(경제학설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
부르주아 경제학의 주장대로라면 피지배계급인 노예와 임금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현실 역사에 대한 최대의 무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
TODO: 김수행이 부르주아 경제학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허수아비 치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 "인간이 정치·과학·예술·종교 등을 추구할 수 있기 전에, 인간은 무엇보다 먼저 의식주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직접적인 물질적 생활수단의 생산과 어떤 인간집단이 달성한 경제발전의 수준이 그 인간집단의 국가기구, 법적 관념, 예술, 심지어 종교적 관념이 진화해온 토대를 이룰 뿐만 아니라, 이 토대에 의해 그런 것들이 설명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마르크스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이 생산양식이 창조한 부르주아 사회를 지배하는 특수한 운동법칙을 발견했습니다."
- 세계화는 반드시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가? 그렇지 않다.
- 국내의 약소기업들은 무한경쟁에 그대로 노출되어 정부의 보호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예: 농업)
- 자본은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노동자는 그럴 수 없다. 언어 장벽, 향수, 문화·종교적 이질성을 견딜 수 없다. (내 의견: 그런 것보다 각국의 이민규제와 노동비자 발급 제한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을 국내에 묶어 두고 외국 기업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온갖 정책을 실시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노동자나 국민 전체보다는 기업에게 더욱 유리한 것이다.
-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선진국의 다국적기업을 위한 것이다.
- 따라서, 현 단계의 세계화에서는 국경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으며, 국민은 정부로 하여금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 내 의견: 각국의 자본이 벌이는 국제적 경쟁이 제국주의적 경쟁으로도 나타나며 이 때문에도 국경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 제3편(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 제4편(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 제5편(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 제6편(임금)
- 제7편(자본의 축적과정)
-
제1편(상품과 화폐)
-
제2편(화폐가 자본으로 전환)
-
제8편("시초축적")
-
김수행은 시초축적, 상품, 화폐를 먼저 설명함.
- 한 사람이 화폐·생활자료·기계·기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필수적 보완물인 임금 노동자가 없다면 그는 자본가가 되지 못한다.
- 따라서 자본은 물건이 아니라,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를 의미한다.
-
봉건 사회의 농민은 관습적으로 일정한 토지와 연결돼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
-
대규모 프롤레타리아의 탄생은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
엔클로저: 플랑드르 지방에서 모직물 공업이 번영해 양모 가격이 오르자 지배계급이 경작지와 방목지를 목양지로 바꿨다. 농민들은 토지에서 추방됐다.
-
16세기 종교개혁 과정에서 국왕은 가톨릭교회가 소유한 방대한 토지를 배앗아 그 투지를 신하, 차지농업가, 도시부르주아에게 헐값으로 팔았다.
r (이윤율)
= S / C + V
= S ÷ V / C ÷ V + 1
= 잉여가치율 / 자본의 유기적 구성 + 1
r (이윤율)
= S / C + V
= 가변자본 1회전당 잉여가치 생산액 x 가변자본 연간 회전 수 / C + V
= 가변자본 1회전당 잉여가치 생산액 ÷ V x 가변자본 연간 회전 수 / C ÷ V + 1
= (실질 잉여가치율 x 가변자본 연간 회전 수) / C ÷ V + 1
| 상품가치 | 노동력가치 | 실질잉여가치율 | 자본회전시간 | 연간잉여가치율
------------- | -------- | ---------- | -------------- | ------------ | -------------- 생산성 향상 | 저하 | 저하 | 상승 | 불변 | 불변 노동강도 강화 | 저하 | 불변 | 불변 | 단축 | 상승
- TODO: 노동강도 강화 -> 상품가치 불변 아닌가? 왜 저하라고 썼을까?
- 개별자본이 노동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목적은 상대적 잉여가치 증대가 아니라 초과이윤을 얻기 위함이다.
- 개별자본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상품의 생산비를 낮춘다. 그러면 적은 비용으로 생산한 상품을 시장 가격으로 판매하여 이익(초과이윤)을 얻거나, 낮은 가격으로 판매해 독점을 시도할 수 있다.
- 초과이윤(특별잉여가치) = 시장가치 - 개별가치
- 그러나 개별자본이 초과이윤을 얻는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경쟁으로 인해 다른 개별자본들도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 자본 전체의 노동생산성 향상은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켜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한다.
- 자본의 내재적 법칙: 자본 전체의 노동생산성의 향상 -> 노동자 생활자료 가치 저하 -> 노동력 가치 저하 -> 필요노동 감축, 잉여노동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