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설은 항상 일정한 시대와 장소의 산물. 그것이 설명하는 세계와 결합해서 봐야 한다.
- 세계는 항상 변하는 과정. 경제학의 주제도 변해 왔다.
-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의 변화에 보수적이다.
- 경제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나 지역에서는 경제학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경제학자 | 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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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 | 산업혁명 초기 |
데이비드 리카도 | 산업혁명 성숙기 |
칼 마르크스 | 자본가 권력에 의한 압박의 시기 |
존 메이너드 케인스 | 대공황 |
'아담'은 아담 스미스가 아니라 기독교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을 뜻하는 듯하다. 즉, 이 장은 고대의 경제학을 설명했다.
- 원인1: 경제 사상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경우
- 원인2: 문제 자체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경우 -> 이 경우가 더 많다.
- 오늘날의 산업 활동과 같은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음.
- 농업, 공업, 서비스 등은 노예 노동에 의존.
- 윤리학이 경제학을 압도: 노예 제도 때문.
- 없음. 노동에 대해 임금이 지불되는 경우 자체가 없었기 때문.
- 대출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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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익을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 (수익의 일부를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나누어줄 것이 기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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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소비를 위해 빌리는 경우 (이자를 받는 것이 윤리적으로 나쁘게 고려됨)
- 고대 세계에서는 대부분 개인적 소비를 위한 대출이므로, 이자를 받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쁘게 여겨졌다.
- 가격은 어떤 방법으로든 생산비에서 유래하는 것.
- 고대에는 임금, 이자가 없으므로 가격에 대한 이론도 없다.
- 화폐의 초보적인 형태가 존재하였다.
- 금, 은, 동, 철, 조개 껍질, 담배, 가축, 술 등이 사용되었다.
- 이미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서 금속을 화폐로 주조하는 관행이 확립되어 있었다.
- 쪼갤 수 있고, 내구성이 있음.
- 공급이 충분하지만 무제한적이지 않음.
- 누구나 가질 수 있음.
- 교환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상품.
- 편리한 사회적 미덕: 노예 제도, 여성의 지위, 공적 이익 대 사적 이익 등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지배계급의 믿음과 합치됨.
- 플리니: "교정소에서 풀려난 노예에게 토지를 경작하게 하는 것은 가장 나쁜 방법이다.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는 모두 그렇다."
- 사유재산은 역사 이전부터 존재.
- 개인 재산은 소련을 포함한 모든 사회에서 인정.
- 소련과의 차이는 생산수단을 공유할 것인지 사유할 것인지의 문제.
중세, 기독교 시대의 경제학
-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분명히 함: 수많은 농민 봉기, 사회주의 혁명의 원인
- 기독교
- 예수의 모범: 특권 계급의 신성한 권리 부정. 민중 선동가의 모델.
- 모든 인간의 평등 지지: 노예 제도, 부의 추구에 대한 공격.
- 율법: 노동 권장, 이자 취득 비난.
- 농민: 노예, 농노, 토지 보유자, 분익 소작인, 임차인 등 여러 자격
- 영주: 교회, 왕, 대귀족, 준귀족, 부유한 소작농민 등
- 농민과 영주의 관계가 어떠했든, 생산물과 용역은 판매되지 않고 인도되었다.
- 따라서, 이 시기에도 경제학이 아닌 윤리학이 나타난다.
- 부분적으로 시장이 존재했으나, 정례적이지 않았고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 시장은 생활의 부차적인 측면이었으므로 오늘날과 같은 경제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 경쟁적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교섭력이 가격에 큰 영향을 줬다.
- 교섭력은 계급, 힘에 영향을 받으므로, 가격의 공정성, 정의의 문제가 생겼다.
- 토마스 아퀴나스: "어떤 물건을 정당한 가격 이상으로 팔려는 목적으로 사기를 범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 윤리와 시장 사이의 긴장 -> 점차 시장이 승리를 거둠
- ('정당한 가격'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살아있다.)
- 이자 취득(대금업)은 금지되었다.
- 교환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교환과 이익을 위한 교환으로 구분되었고, 후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적인 상인은 대금업자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오명을 썼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대에서 100년 후 견해가 변화한다.
- 니콜 오렘(1320년경 ~ 1832년)은 상업과 화폐에 주목했다. 왕의 정책은 상업을 장려하는 것이며, 이는 주로 화폐의 올바른 운용을 뜻했다.
- 그레셤의 법칙: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중상주의
- 15세기 중반 ~ 18세기 중반 (300여 년)
- ~ 산업혁명, 미국 독립혁명,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출판으로 중상주의 시대는 끝남. 미국 독립혁명과 <국부론>은 둘 다 중상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발.
- 중상주의는 이를 대표하는 이론가가 없으며, 하나의 체제에 불과했다.
- 15세기경 베네치아, 피렌체, 브뤼헤 등은 안트웨르펜, 암스테르담, 런던, 한자 등의 도시에게 지위를 양보했다.
- 상인 도시에서 거상은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정부였으며, 국가를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이용했다.
- 항해술의 발달로 아메리카와 동아시아를 발견 -> 금, 은의 대량 유입 -> 물가의 일반적 상승 (화폐수량설의 초기 현상)
- 근대 국가의 출현과 권위 확립, 국가 권력과 상인 세력의 관계 밀착.
- 중상주의는 중세 일반의 윤리적 태도와 상반됐다.
- 부, 부에 대한 추구가 존중되었다.
- 이자를 받는 것은 이자가 적당한 선인 경우 용인되었다.
- '정당한 가격'이라는 개념이 후퇴했다. (그러나 경쟁으로 가격이 너무 낮아지는 것은 여전히 막으려 했다.)
- '임금' 개념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상인은 단순히 가내 공업으로 생산된 국내 생산품 또는 해외 생산품을 직접 구매해 거래하는 것이었기 떄문.
- 경쟁에 대한 부정적 태도: 상인은 가격이나 상품의 독점 지배를 원했다.
- 개인, 국가가 금, 은을 축적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 이러한 태도는 이후에 오류로 지적됐다. 그러나 중상주의는 그 시대 상인과 왕의 이익을 표현하는 데는 적절했다.
- 국가가 금, 은을 축적한 것은 군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수입 금지
- 독점면허 남발
-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국가들의 투쟁
- 공동의 임무, 항해를 위해 자본과 힘을 끌어모은 일시적인 결사로 시작
- 17세기 초 영국 동인도 회사(1600 ~ 1874)
- 17세기 말 ~ 18세기 초 주식회사 등장
- 확고한 금속 통화가 있더라도 가격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
- 가내 공업은 공장 공업보다 덜 냉혹하지 않다.
중농주의
- 다른 유럽 국가보다 지주 세력이 강했고, 농업 숭배 분위기가 지속됐다.
- 프랑스 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중상주의 정책에 양보하지 않았다.
- 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정신과 합치해 지주 계급의 이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
- 모든 부의 원천으로서 농업의 역할을 강조.
- 토지의 우월성과 특권을 기초로 한 낡은 사회에 헌신.
- 전통적인 체제가 살아남아야 하지만, 당대의 경제와 정치 구조에 결함이 있으므로 개혁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
- 케네(1694 ~ 1774)
- 튀르고(1727 ~ 1781): 작은 혁명으로 대혁명을 저지해 보려 했던 관료. 다른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해임당함.
- 뒤퐁(1739 ~ 1817): <중농주의>라는 제목으로 케네의 저작을 모아 편집.
- 자연법이 경제적, 사회적 행동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
- 자연적인 동기와 규제에 따라서 사물이 해결되도록 맡겨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함.
- '자유방임'
- 중상주의와 중상주의의 각종 규제에 대한 반대.
- 모든 부는 농업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
- 농업에 부과하는 조세에 관해 주장.
- 그런데 순생산물 개념에 따르면, 농업 이외의 직업은 어떠한 부도 생산하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농민에게 과세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 이후 미국에서 헨리 조지(1839 ~ 1897)는 순생산물 개념을 발전시켜 단일세를 주장했다.
- 마르크스는 생산이 잉여수입을 반드시 생산하고, 이 잉여가 특정 계급에게 귀속된다는 개념에 주목.
- 가격은 생산비를 반영한다고 주장. (그러나 무엇이 생산비를 결정하는지에 대한 견해가 불충분)
- 임금은 노동자의 생존에 필요한 최저한의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언급.
- 케네가 생각해 냄.
- 생산물, 화폐 등의 흐름 경로를 찾아내기 위한 구상.
-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다가 나중에 주목받았다.
- 1930년대 와실리 W 레온티예프가 이를 발전시켜 '투입산출분석', '산업연관분석'이라 불리는 표를 만듬.
- 중농주의는 구체제를 개혁하려는 동시에 구체제를 방어하려 했다.
- 구체제의 개혁은 실패했고 구체제는 혁명에 의해 사라졌다.
- 경제 시스템이 상호 연관, 상호 의존된 구조라는 중농주의의 사상은 후세에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