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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roh
Created April 14, 20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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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id="우리-민족의-형성과-선사-문화">우리 민족의 형성과 선사 문화</h1>
<h2 id="인류의-출현과-우리-민족의-형성">인류의 출현과 우리 민족의 형성</h2>
<p>현재 알려진 최초의 인류는 약 390만 년전 아프리카 동남부에서 출현한 <strong>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strong>이다. 뇌용량이 크며 <s>대가리가 크다</s> 불과 언어 도구의 사용</p>
<ul>
<li>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것은 <strong>구석기</strong>시대 부터이다</li>
<li>우리 민족은 신석기 시대에 만주와 한반도를 터전으로 농사를 지으며 정착한 몽골 인종의 한 갈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li>
</ul>
<h2 id="구석기-시대의-모습">구석기 시대의 모습</h2>
<ul>
<li>구석기인들은 <strong>뗀석기</strong>를 사용하고, <em>열매 채집이나 사냥 물고기잡이</em> 등으로 식량을 구하였다.</li>
<li>정착된 생활이 아닌 <strong>이동 생활</strong>을 하며 동굴이나 바위에서 살았다, 또한 <strong>동굴에 벽화</strong>를 그리며 사냥의 성공과 풍요를 기원하였다</li>
</ul>
<blockquote>
<p>평양 상원 검은모루 동굴, 충남 공주 석장리, 경기 연천 전곡리가 대표적인 유적지</p>
</blockquote>
<ul>
<li>한반도와 만주지역에 구석기인이 살기 시작한것은 약 70만년 전부터이며, 이 시기에는 <strong>뗀석기와 뼈도구</strong>를 사용했다.
<ul>
<li>초기에는 <strong>찍게와 주먹도끼</strong> 등이 등장하고, 한개의 석기를 여러 목적으로 이용</li>
<li>구석기 시대 이후에 <strong>석기 제작 기술이 발전</strong>하면서 <strong>돌날과 좀돌날</strong>이 제작되어 사용</li>
</ul>
</li>
<li>구석기 시대는 <strong>계급이 없는 평등사회</strong>였으며 경험 많은 연장자가 그룹을 이끌었다</li>
<li>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 가는 시기에는 기온이 상승하면서 다양한 동식물이 출현하였다 – 이를 위해서 석기를 작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li>
</ul>
<blockquote></blockquote>
<h2 id="신석기-시대의-모습">신석기 시대의 모습</h2>
<ul>
<li>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며 식량을 생산하는 단계로 발전
<ul>
<li>한곳에 정착하여 <strong>움집</strong>을 짓고 살며, <strong>정교한 간석기</strong>로 농기구를 만들며,<br>
<strong>토기</strong>를 만들어 식량을 조리하고 저장</li>
</ul>
</li>
<li>이 시기에는 다양한 형태와 용도를 가진 <strong>간석기</strong> 와 곡물의 저장과 조리를 위해 <strong>토기</strong>도 제작하였다.
<ul>
<li>신석기 시대의 대표 토기인 <strong>빗살무늬 토기</strong>는 서울 암사동, 경남 김해 등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 되었다.</li>
</ul>
</li>
<li>신석기인들은 곡물을 경작하고 재배하는 <strong>농경 생활</strong>을 하였고, 이때 동괭이나 돌삽 등의 간석기와 동물의 뼈나 뿔로 제작한 농기구를 이용하였다. 또한 농경외에도 짐승을 키우는 <strong>목축 생활</strong>을 하였다.
<ul>
<li>그럼에도 사냥과 채집, 물고기잡이는 여전히 식량을 얻는 중요한 수단이였다.</li>
<li>활과 창으로 사냥을 하고, 그물과 작살 뼈로 만든 났기 등을 이용하여 물고기 잡이도 하였다, 또한 가락바퀴나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이나 그물을 만들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조개껍데기 예술품이나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걸이 등의 예술품을 만들었으며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태양이나 특정 동물, 영혼등을 숭배하기도 함</li>
</ul>
</li>
</ul>
<blockquote>
<p>신석기 시대 집터 유적(서울 강동)<br>
<img src="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49D83359E44D9D07" alt=""></p>
</blockquote>
<h1 id="고조선의-성립과-여러-나라의-성장">고조선의 성립과 여러 나라의 성장</h1>
<h2 id="청동기-문화의-형성">청동기 문화의 형성</h2>
<p>농업 생산력이 커지며 잉여 생산물이 증가하였고 청동제 무기를 사용하는 정복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strong>빈부 격차와 계급</strong>이 발생했다</p>
<p>만주와 한반도 지역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 청동기 문화가 보급되었다.</p>
<ul>
<li>이 당시 <strong>청동기</strong>는 주로 <em>비파형 동검과 거친무늬 거울</em> 등 주로 <strong>무기와 제기, 장식품</strong>에 이용되었으며, <strong>농기구들은 주로 석기</strong>로 만들어 졌다.</li>
<li>당시 사람들은 <em>반달 돌칼</em> 등과 같이 <strong>더욱 발전된 석기</strong>를 이용하여 <strong>농사</strong>를 지었고, <strong>민무늬 토기</strong>에 곡식을 저장하였다.</li>
<li>농업은 주로 조, 피, 보리, 수수.등 밭농사 중심이었으나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도 하였다.</li>
</ul>
<p>청동기 시대에 정치권력이나 경제력에서 우세한 부적은 청동제 무기를 사용해 주변을 정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strong>족장</strong>이 등장하게 된다</p>
<ul>
<li><strong>족장</strong>은 제사와 정치를 모두 주관, 하늘의 자손이라 자처하며 청동 검, 청동 거울, 청동 방울 등으로 자신의 권위를 세움.</li>
</ul>
<p>지배층의 무덤이였던 <strong>고인돌</strong>, 농사의 풍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며 그리던 <strong>바위그림</strong> 등이 있다</p>
<blockquote>
<p>울산 울주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br>
탁자식 고인돌 (인천 강화)</p>
</blockquote>
<h2 id="철기의-보급과-사회-변화">철기의 보급과 사회 변화</h2>
<p>기원전 5세기 경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strong>철기</strong>가 보급되기 시작<br>
초기에는 청동기와 혼용했지만 철기가 확산되며 청동기는 주로 제사용 도구로 사용</p>
<ul>
<li>이 시기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strong>세형동검</strong>과 잔무늬 거울 등이 제작되었다.
<ul>
<li>독자적인 청동기 제작은 그 틀인 <strong>거푸집</strong>의 존재로 알 수 있다.</li>
</ul>
</li>
<li>철기는 청동기에 비해 흔하고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ul>
<li><strong>철제 농기구</strong>를 사용하면서 농업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고 인구도 늘어났다</li>
<li>하지만 전쟁도 증가했다</li>
</ul>
</li>
</ul>
<p>철기 시대에는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 이외에 덧띠 토기, 검은 간 토기 등도 이용되며, 독 무덤이 만들어 졌다</p>
<p>이 시기의 유물로는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등의 중국화폐가 있다</p>
<ul>
<li><strong>중국과의 교류가 활발</strong>했다는 증거</li>
</ul>
<h2 id="고조선의-성립과-변천">고조선의 성립과 변천</h2>
<p>청동기가 사용됨에 따라서 권력을 가진 <strong>군장</strong>이 출현하였다. 강한 군장이 주변의 부족들을 통합하며 지배 영역을 넓혔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등장한 것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em><strong>고조선</strong></em> 이다.</p>
<ul>
<li><strong>삼국유사</strong>에 따르면 단군은 <strong>농경 문화</strong>를 바탕으로 고조선을 건국했음을 알 수 있다.</li>
<li>고조선은 랴오닝 지방과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이는 <strong>비파형 동검</strong>과 <strong>탁자식 고인돌</strong> 의 출토 범위를 통해 추정 가능하다.</li>
</ul>
<p>중국의 진한 교체기에는 <strong>위만</strong>이 중국 연에서 무리를 이끌고 조선으로 들어왔다.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에세 서쪽 변경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꼈지만, 세력읠 키운 <strong>위만은 준왕을 몰아내고</strong> 고조선의 왕이 되었다.</p>
<p>위만 조선은 <strong>철기 문화</strong>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철제 무기를 이용하여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p>
<p>고조선이 강성해져 한을 압박하자 한 무제는 대군을 보내 고조선을 공격한다. 고조선은 패수에서 대승을 거두는 등 완강히 저항하지만 지배층의 내분으로 왕검성이 함락되어 멸망하였다.</p>
<h2 id="고조선의-정치-조직과-사회-모습">고조선의 정치 조직과 사회 모습</h2>
<p><strong>제정일치</strong> 사회였던 고조선은 왕권이 세습되면서 정치 조직이 안정되었다.</p>
<ul>
<li><strong>삼국 유사</strong>에 나오는 풍백, 운사, 우사에 해당하는 관직은 농사와 형벌 등을 관리하였다.</li>
<li>이후 국가가 발전하며 왕 밑에는 비왕, 상, 경, 대부, 대신 , 장군, 박사라는 관직을 두었다</li>
</ul>
<p>고조선에는 <strong>8조의 법</strong>이 있었다 현재에는 이중 3가지만이 전해지는데, 이를 통해 고조선 사회가 <strong>계급 사회</strong>였다는 점, <strong>개인의 생명과 노동력</strong>을 존중하고, <strong>사유 재산</strong>의 개념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p>
<p>고조선 멸망후 한 군현은 엄격한 법을 만들어 토착민을 통제하였다</p>
<ul>
<li>법 조항이 60개로 늘어났다.</li>
</ul>
<h2 id="여러-나라가-성장하다">여러 나라가 성장하다</h2>
<p>철기 문화를 배경으로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성장하였다<br>
<img src="data:image/jpeg;base64,/9j/4AAQSkZJRgABAQAAAQABAAD/2wCEAAkGBxITEhUSExMWFhUXGBgWFhUYGBUYFxYZFRYYFxcXFhUYHSggGBolHhYWITEhJSkrLi4uFx8zODMsNygtLisBCgoKDg0OGhAQGi8lHyUtLy0tLS0tLS0tLS0tLS0tLS0tLS0tLS0tLS0tLS0tLS0tLS0tLS0uLS0tLS0tLS0tLf/AABEIAQoAvgMBIgACEQEDEQH/xAAaAAEAAwEBAQAAAAAAAAAAAAAAAQIEAwUH/8QAOBAAAQMCBAQEBgEDAwUBAAAAAQACESExAxJBUQRhcZEigaHBBRMysdHw4VJi8RRCcoKSssLSFf/EABoBAQEBAAMBAAAAAAAAAAAAAAABAgMEBQb/xAAmEQACAgIDAAIBBAMAAAAAAAAAAQIRAyEEEjFBUSITMmFxBRSR/9oADAMBAAIRAxEAPwD6QxgHudT1VkReAcAUETQqUQHNtDGmnuP3muiq9s+x2Khr6VpF+X8K+kLouYJNqDmJJ8tFPiHP0P4KUC6KrXg9drHsrKUULjxeIWsJbcfpVziaCp5e50SHHUDpfubLS07ZGZMVnzGNDpDpDogTSR0E7rUyQAIFKX28ldrQLKVXO9fBEjLw+HlJJzEnW+pNx15Lv8zkex9ldFHK9sqVHMuJoJG5I+03KZQC3zHpNey6Kj7t6/cFRMF0RFChEVXvilzt+6ICyq54FyoyE3PkKDvcqHOawTHYK0Q6IiKFCIiAKC0G4HZSiAIiICr2AiD+9FTDw2kVaJFDQXC6qjmm48xofwVUyFgpVM/9p9Pypa8Gx/PZKBZERQoREQBUfdvU/wDiVdUdcef2VRGXVXu0Fz+yVJMVKrhjU3N/YeSIDIdSfKn8+qnJAMUVkSxR0bhMLQbUmQfvv5rPlk3zAChiBW/U0C65h8uNREjWhBP5UFejzZRSSSW/k44IIoJVMxNqDci/QLzaOQ6IqfL3JPoOw90+XFqfbsroF0VPl8z+8rIcw5j1/lKBdFAKlQoREQBUxBqLi3uPNWkb8vPZSgaIBmqlUwbd/uVdGAiIgCo2pnQUHufZQ6pjap87BXAV8IVfUgeZ6D+VdEUKEREBBaDopREsFPljmepUueLa7Cp/hVkm0gb2J6TbqrtaBZX+yFfmcj2n7ShxNge0fdXRAU+XP1GeVh/Kj5Q0EcxRdES2KOeGIlvmLWN/X7hdFTE/29fYq6MHl8X8OLnG0PnNQU8IFyJqAAvUCIq5Nqmcs8sppJ/B5Q4R+ZhyxlLM1frIfJfQ1Fz4v6ivVRElJyGTK51ZzsTtf8/nuui5l0xS9gdaEESDS56K4bBIGhK5p4qxqTVPw4E90SubZImYnQRrzIupedBc+g1KsBFFweGg1oFApRFChERAERWw8PNNYAEk87x79lvHjlkl1iRuiqKGgkZtKA8ySAQOkqUnjlCr+RYREWChERAEREBR929f/Uq654pFBrIga3TFxmt+ogTaVaCV+HRFDXAgEGQagixCExUqAlVc4Cp/eirhYzXTlcDF45qwbUnyHurX2GmioBmatEVg1OxMbKcK0bU/n1UMxmmzgaxQ6xMdqqXYc6kTQxqtOTapk60WBUqhw9qaUi3mFLJ177/grNAsiKnzNgT2g+qlFKmTJBsTApBjf1XQOkToowxAA5V66qj4Bve466x+3WkrdIhc4g3H56brfw+FDYN6k+enPZWwPpBiCQJ0MxWVdezx+MsW7uzN2QWCMsCLRp2XA8G3QuHn+QVoRdiUIy/crB5qIi+cNhEXHinUgGCaCk6gV2FQPNVK3RG6KDiSHlrhAiZ2A1J19vNdGjNU20FvNw9lwwgTka4zdxmLN+mYvUg+XJbFudLwiIa0Cy54zniMgFwTJim1iuqLCe7NxfV2c+GZlY1uwA7K7hS8cxEjupRSw3uzhw+E4Euc4uNRXLGUOJbYCsFdwsH/AOkPmFkAwQDBMiXtYMwLQB9WhNlzPxlsA5XVc5oAi7TGsXr25haakyybk7Z0wOFcHNc6JE5nZi4u8JEyQIFqBb1QkkkCgFCfx+VOG7e4ofY9kk29sTyObtmDjeBw8xx3vLQ1pzVgBuRwJ7HWbLh8Pwm4mFg4uHil+GQHh1QXBxa6gaP7Ygii9bEYHAhwBBoQQCCNiDQquBhtaMrGhrQSMrQGgbwBRO2jNklxNhHM+wVmiABtTspRZsga0kgC59NyVuwsEAResyd91z4LDpm1PoNAtC9vi4Fjjb9Zl7CIi7QCIiA81FBK04PCzBd/2/8A1v0+68DDgllejTdGYlYuLBJOYSyCbaQSSHaOoKcxtK9tvDMBmLViTHZefxnDuAyxLSWieWYEgjSgK7EuJLEu3pluyuDhkVP1GJiwizRyEnuV1RF0m7NIIiKFMnxTjfk4ZxMuaCBExfnBhcML4uHPYwMd42tdmH0jMNT+zK3Y+A14yvaHC8EAiRYwVDOGYCCGtBAAECwFgFpNUCSxrrtB0qBZwB9RlKzv4dshoY3WKCAKEm+4tEUC0A6NA66fyrMbHud1boWS0QIUOZNbHcKyLFgpk5nvH2hWaIspRLARE5ASdh+0VjFydIGvgj4ehP3n3Xdc+Hw8rY1uep2XRfQ401BJ/RxhERbKEREBk4XBM5iIAtOp3j9utaIsYsccceqAWbjXiMutD0A19lPEcRHhbffQfk8lkA/dT1XV5XJUE4L0JWSiIvHNhEXPGxIoIzGgHM6nkKnyVSvwgxMUCkEk2aL9eQ5lVGETVxn+0Eho5bu8+wV8LDDepuTcnc/tFdW68FEAKUXPMTa2/wCN+qyDoi5ihgdTNf0n8qzxII3CUVFoReXh8C5rcRpynM2AdBU3BAtfc7rd8P4d8EZYl0iRDQMrRTcUK5lhcv27OWcIxTalZ1FTAqdB7nYL0MHCDRHc7lMHDDRA8zqTuVdetx+MsS/k692ERF2QEREAREQBEVcXEDRJ/k9EbrbBh4lwzmkaf8ufsqq3EY2YzZosDSu5XTA4fNV1tBv/AMuXL/C8jJiebM+n/Sp0jlhsLvpE87Dvr5LQzg/6jPISB5mZK0ou9j4mOHxbJZx/0rNvOTPmblWHDtgtihqamZ3m8roi5+kfohhdw7pIAkCxJvOg9briXAUNDsaFeos3xHEAZUxUD1r6Sunm4eNpyWi3R5xxwSGzEiayCRsNp77brpM0FBvan9o91ixHtdiEFpBEkEWMCk7jw6L0GigXmTSjQTsNaBYQjjRSqv8AIczYU1+3mswXaSRo24XDAVJzHQ6dQF3VME+EVBoBIqJAqrr6GEVFUkYCIi0UIiIAiIgCIiALljYAcQSSIm0axuOS6oo0mqYOeFw7W1udzU+W3kuqhESSVIBERUBERAF5vxFuZ0ExEZZsZFaG40jkt+NiBok+Q3OgWB7i76jPLTp0XU5eSMY9W9v6FWZuGwAGgSYEgWtNa303WkKAFK8aUrZpKgsXHcb8twG+sTXuPda8R0Cl7Dzoub+GYYkTSLkSLmYurGltnJjlFS/JWjg74k5mIAADmMETEwGkkjfxCOhle7hYocJHbUcivI+Q3NVoM+IGKgj/ADRaGPynN35j+L/5Xe4/K6tQfhMjg0uqr7PRREXqnEUx8UNaXGYG11XheIGI3M23l7K2Pgh7S11j7GVHD4DWNytECvrVXVGd2OJxwxpcZilr1MKOF4huI3M21R2orY2C1whwkdSNCNORI80wcINaGtEAW+6aobsuiIoaOP8Aqmb+h/C7LzVOHiOb9Nv6dPLZefj56bqaotHoouP+rZz6Q6fsmHxLTrB2MDtuu8skW6sydkRFooREQGbimPJpGUVvBkbk6dFka6TbzmQvUIWPH4O2QQdfEYjzn03XT5PG/U2vRdGbDxJAoROhiaUNj+yrrUOEGXKbzJIoZ5eVFn4jBygEy4yRqKaQB/uprNV1Z8GS2mOxyxYgzb9tzVm2E31XBuKM3ipbKT9NRo62b1ouPD4rszi5wIkwPDTUVFhAJruuq8b2vovY1OqRFxfaDp1XRcOGxQZgyaE85Fxy08l3XHJVoqNPBYlMu1un8W7LSvMmoIuKj92Nl6OFiBwkdtjqCvZ4mf8AUjT9RlosiIu2AiFw3vbn0RAEREB5qKNQAJJt/krQzhCfqMDYX7rwcXHyZNxWjTZwUHbekdVtbwjBcTzNf4CgcI2ZrvE0Hku1H/Hy1bJZfh8LK0DvzOpXRSoXqJUZCLNgcfhveWAnM0kGRA8N4Ot1qVaoJpkIs/Dccx5IbMibiLGFoRqgnYUqFl4ji4OVok2JNhT1NliU1FXJgx8diNw89JDRmik7kAHQb2ryXkO+JYeUYpYYJcwCzrA0rBF7bmZXs4ri4gkC0EjUVuD5WXHH4fCgl7WRckgRoPKzewXi5ZRU24+M3HzZn4Ti2fMOCB4gCSRPcyKTXUr0FlOJhEtIcwOM5SC2ToeopXorsx80ta5hIvDpI0tC4XvY8LtqZ0iBzn2p6rRwr4dH9VPMVHpPouNAOQH2QupO0HtVbwT6ZEyPw9RFJUL3yEOYCQSBIsdp2UoiAIiIDNwmCIzEVmk6Cw6anzWlSoWYQUIqKAREWgFIUIgMvB/D2YZc5sy68xvOg6dlqIRFW7IkkZ+G4NjCXNmSACSZstCIlhKgsnGYVWkCpkE1H+0kExzAWtSstJqmGeUwyAeSzcXgNxA5pzQaEtvSLHWItvKr8QLg2Gl0jM3wz9UeCY0POiz4/wAyGQ4thrqeKDcCaXsvC6OLZ2ceLsk7OmD8OAa0NeYbMCJkOcHEOms+Fu1juu2HwuRzn5nOzUhxtJFAdBSy0YbSL6wfOK/b1TG+k8q9qrivZxMxcfivmAQ3wuoXtAcSCGxmFYN+oVcTFxPmFoeIkDKS0UgTAub+i9AvbeRG8hH2/e65ITVpUcqypRqvg9UqFzwMbMCYipHvPqui99NNWjrBERChERAEREAREQBERAEREAREQBCUXLin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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nter image description here"></p>
<h3 id="부여">부여</h3>
<p>만주 쑹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 지대에서 5부족이 연합한 <strong>연맹 왕국</strong> 형태로 성장하였다.<br>
왕 아래에는 가축의 이름을 딴 <em>마가, 우가, 저가, 구가</em>의 부족장이 있었다</p>
<ul>
<li>이들은 사출도로 불리는 행정 구역을 다스리고 훙년이 들면 왕을 폐위 시키기도 함</li>
</ul>
<p>부여에는 왕이 죽으면 사람을 함께 묻는 <strong>순장</strong>과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p>
<ul>
<li>또한 도둑질 살인등을 처벌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li>
</ul>
<p>12월 에는 <strong>영고</strong>라고 불리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p>
<h3 id="고구려">고구려</h3>
<p>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의 졸본 지방에 자리 잡았다. 이 지역은 산간 지대여서 농사가 힘들었기에 정복전쟁을 하였다.<br>
정복하는 과정에서 수도를 <strong>국내성</strong>으로 옮겼고한의 군현을 몰아내 요동 지방으로 진출하고 옥저를 정복해 소금과 해산물을 공물로 받았다</p>
<p>부여처럼 고구려는 5개의 부족이 연합한 연맹 왕국으로 왕 밑에 상가, 고추가, 대로, 패자 등 <strong>제가</strong>들이 있었고, <strong>제가 회의</strong>를 열어 중대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기도 함</p>
<p>고구려는 남자가 처가에서 살다가 돌아가는 <strong>서옥제</strong>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다<br>
10월에 추수가 끝날때 <strong>동맹</strong>이라는 제천행사가 있다.</p>
<h3 id="옥저와-동예">옥저와 동예</h3>
<p>함경도 및 강원도 동해안에 위치한 옥저와 동예는 <strong>왕이 없었고</strong>.각 읍락에 읍군, 삼로라고 불리는 <strong>군장</strong>이 있어서 자기 부족을 다스렸다.</p>
<ul>
<li>이로 인해 강력한 정치권력이 성장하지는 못했다</li>
</ul>
<p>옥저는 <strong>민며느리제</strong>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다. 또한 가족이 죽으면 가매장을 하였다고 뼈만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넣었다</p>
<p>10월에 <strong>무천</strong>이라는 제천 행사를 하였고 다른 부족의 경계를 침법하면 가축이나 노비로 변상해야 하는 <strong>책화</strong>의 풍습이 있었으며, 같은 씨족끼리는 결혼 하지 않는 <strong>족외혼</strong>을 엄격하게 지켰다</p>
<h3 id="삼한">삼한</h3>
<p>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는 진이 성장하고 있었다. 중국과의 교역 과정에서 진은 고조선의 방해를 받았다. 진은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는 유민들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고,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strong>미한, 진한, 변한</strong>으로 발전 하였다.</p>
<ul>
<li>후에 이들은 삼한이라는 연맹체로 성장하였다.</li>
</ul>
<p>삼한에서는 <strong>신지,읍차</strong> 등으로 불리는 군장 세력이 성장하였고, 종교적 지배자로는 <strong>천군</strong>이 있었다.</p>
<p><strong>천군</strong>은 제사를 주관하고 신성 구역인 <strong>소도</strong>를 다스렸다.</p>
<p>삼한은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자리하여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철제 농기구로 벼농사를 많이 하고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strong>계절제를</strong>열었다</p>
<blockquote>
<p>제천 의림지,<br>
밀양 수산제</p>
</blockquote>
<h1 id="삼국과-가야의-발전과-대외-관계">삼국과 가야의 발전과 대외 관계</h1>
<p>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여러 나라들은 우세한 집단의 족장을 왕으로 삼는 <strong>연맹 왕국</strong>을 이루었다. 이러한 연맹 왕국은 <strong>고구려, 백제, 신라</strong>로 통합되면서 중앙 집권 국가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p>
<h2 id="고구려의-성립과-체제-정비">고구려의 성립과 체제 정비</h2>
<p>고구려는 1세기 초 <strong>졸본에서 국내성으로</strong> 도읍을 옮기면서 세력을 확장하였고, 삼국 중 가장 먼저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p>
<p>1세기 후반 <strong>태조왕</strong>은 옥저를 정복하여 청천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는 등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p>
<p>2세기 후반 <strong>국천왕</strong>은 부자 상속의 왕위 계승을 확립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br>
부족적 전통의 5부는 방위를 의미하는 5부로 개편되고 이후 행정적 성격으로 정착되었다</p>
<p>4세기 초 <strong>미천왕</strong>때는 낙랑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우역을 확보하지만, 이후 <strong>고국원왕</strong>이 백제의 <strong>근초고왕</strong>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는 등의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즉위한 <strong>소수림왕</strong>은 내부 체제 정비를 위해 노력하였다.</p>
<ul>
<li><strong>불교</strong>를 수용</li>
<li><strong>태학</strong>을 설립해 인재 양성</li>
<li><strong>율령</strong>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
<ul>
<li>이러한 개혁을 통해서 고구려의 중앙 집권 체제는 더욱 강화되었다</li>
</ul>
</li>
</ul>
<h2 id="백제의-성립과-체제-정비">백제의 성립과 체제 정비</h2>
<p>백제는 <strong>부여와 고구려에서 내려온 이주민</strong>과 <strong>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strong>이 결합하여 성립되었다</p>
<p>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주몽의 아들 온조가 <strong>하남 위례성</strong>에서 백제를 건국하였다고 하고 또 서울 석촌동의 백제 초기 무덤 양식이 고구려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p>
<p>백제의 지배층은 우수한 철기 문화를 소유한 이주민 집단이 이루었다</p>
<p>백제가 <strong>자리잡은 한강 유역</strong>은 <em>농경하기 적당했고</em> <em>바다를 통해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유리하였다</em>. 백제는 이를 바탕으로 <strong>빠르게 성장</strong>하였다.</p>
<p>3세기 중엽 <strong>고이왕</strong>은 율령을 반포하여 중앙 집권적 국가의 토대를 만들었다.</p>
<ul>
<li>오아 아래에 <strong>6좌평</strong>을 비롯한 광등과 공복을 제정하여 위계질서를 확립하였다</li>
<li>밖으로는 북쪽의 낙랑군과 싸우며 한편으로 만쪽의 목지국을 제압하여 <strong>한강 유역을 장악</strong>했다.</li>
</ul>
<h2 id="신라의-성립과-체제-정비">신라의 성립과 체제 정비</h2>
<p>신라는 경주 일대에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strong>사로 6촌</strong>이 <strong>박혁거세</strong> 집단을 중심으로 <strong>사로국</strong>을 건국하였다.</p>
<p>사로국은 뛰어난 철기 기술을 바탕으로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 <strong>신라</strong>로 발전하였다. 신라는 초기에 <strong>박,석,김</strong>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차지했다.<br>
유력 집단의 우두머리가 <strong>이사금</strong>으로 추대되고, 주요 집단은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유지 하고 있었다.</p>
<p>신라는 4세기 후반 <strong>내물왕</strong>때에 이르러 고대 국가로 성장하였다.</p>
<ul>
<li>내물왕은 김씨에 의한 왕위 계승권 확립</li>
<li>왕의 칭호도 대군장이라는 뜻의 마립간으로 고쳤다.</li>
<li>또한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낙동강 동쪽의 진한 지역을 대부분 차지</li>
</ul>
<ul>
<li>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의 교류로 중국의 선진 문물 받아들임</li>
<li>이 당시 왜가 침입해서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이 물리쳐준 적이 있었다.</li>
</ul>
<h2 id="가야의-성립과-발전">가야의 성립과 발전</h2>
<p>철기 문화를 토대로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자, <strong>낙동강 하류의 변한</strong> 지역에서 <strong>가야는 연맹왕국</strong>으로 발전하였다. 3세기부터 <strong>금관가야</strong>가 연맹을 주도하였다</p>
<p>금관가야는 <strong>철을 다루는 기술</strong>이 좋았으며, 낙동강 하류의 해상 교통을 중심으로 낙랑군 왜 등과 교류했다.</p>
<p>그러나 5세기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 <strong>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strong>하는 과정에서 <strong>금관가야까지 공격을</strong> 받았으며 <strong>금관가야는 맹주로서 지위를 잃게 되었다</strong></p>
<h2 id="삼국-항쟁의-주도권을-잡은-백제">삼국 항쟁의 주도권을 잡은 백제</h2>
<p>삼국 간의 항쟁에서 가장 먼저 주도권을 장악한 나라는 <strong>백제</strong>이다.<br>
4세기 중엽의 <strong>근초고왕</strong>은 왕위의 부자 상속을 확립하여 왕권을 강화했다.</p>
<ul>
<li>마한의 남음 영토 정복</li>
<li>남동쪽으로 가야의 세력권이던 낙동강 유역까지 영향력 행사</li>
<li>북쪽으로 고구려 평양을 공격해 고국원왕 전사, 황해도 일대 차지</li>
</ul>
<p><strong>침류왕</strong>때에는 중국 동진으로부터 <strong>불교</strong>를 받아들여 왕실의 권위를 놏이고 백성의 사상적 통합을 꾀하였다</p>
<p>그러나 4세기 말부터 고구려의 공격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5세기에는 <strong>고구려의 남진 정책</strong>으로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strong>웅진</strong>으로 천도하였다.</p>
<h2 id="동북아시아의-강자로-성장한-고구려">동북아시아의 강자로 성장한 고구려</h2>
<p>4세기 말에 즉위한 고구려의 <strong>광개토 대왕</strong>은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strong>대외 진출</strong><s>정복 전쟁</s>을 시작했다.</p>
<p>광개토 대왕은</p>
<ul>
<li>서북쪽으로는 후연을 격파,</li>
<li>동쪽으로는 숙신과 동부여를 굴복시켜 요동을 포함한 만주 남부 지방과 두만강 하류 유역까지 차지.</li>
<li>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 지역 차지</li>
<li>신라 내물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치며 남부지역까지 영향력을 넓힘</li>
</ul>
<p>광개토 대왕의 뒤를 이은 <strong>장수왕</strong>은 분열된 중국의 남조, 북조와 교류하면서 외교적 안정을 꾀하고, 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다.</p>
<p>장수왕은 국내성 기반의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strong>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strong>.<br>
이후</p>
<ul>
<li>백제를 공격하여 수도 한성을 함락</li>
<li>남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한반도 중부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
<ul>
<li>충주 고구려비를 통해 알 수 있다</li>
</ul>
</li>
</ul>
<p>– 장수왕의 <strong>남진 정책</strong>으로 <strong>백제는 웅진으로 천도</strong>하였고, <strong>신라와 동맹</strong>을 맺어 대응하였다.<br>
신라도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백제와 화친하는 등 고구려의 남진 정책을 경계하였다.</p>
<h2 id="한강-유역을-차지한-신라">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h2>
<p>신라는 6세기 초 지증왕 때에 본격적인 제도 정비를 실시하였다.</p>
<p><strong>지증왕</strong>은 나라 이름을 <em><strong>신라</strong></em> 로 정하고 , 왕의 칭호도 마립간에서 중국식인 <strong>왕</strong>으로 바꾸었다.<br>
또한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strong>우경</strong>을 장려하고, 노동력을 위해서 <strong>순장을 금지</strong>했다.<br>
지증왕은 수도와 지방의 행정 구역도 정리하였는데 특히 <strong>지방 행정 구역을</strong> <strong>주,군</strong>으로 나누어 <strong>관리를 파견하였다</strong>.<br>
한편 지금의 울릉도 일대인 우산국을 비롯하여 경상도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p>
<p>지증왕의 뒤를 이은 <strong>법흥왕</strong>은 <strong>율령</strong>을 반포하고 관리들을 17등급으로 나누어 복색으로 서열을 구분하는 등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br>
또한 <strong>병부</strong>를 설치하여 <strong>군권을 장악</strong>하고, <strong>김해지역의 금관가야를 병합</strong>하였고, <em>건원</em>’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br>
그리고 <strong>이차돈</strong>의 순교를 계기로 <strong>불교</strong>를 공인하여 사상적 통합을 도모하였다.</p>
<p>신라는 6세기 중반 진흥왕 떄에 이르러 크게 팽창했다. <strong>진흥왕</strong>은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strong>화랑도</strong>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였다.<br>
또한</p>
<ul>
<li><strong>백제 성왕</strong>과 연합하여 한강 상류를 차지하고,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지역을 빼앗아 <strong>한강 유역을 모두 장악</strong></li>
<li>고령의 <strong>대가야를 병합</strong>하여 낙동강 유역 차지</li>
<li>북쪽으로는 <strong>함흥평야</strong>까지 진출하였다
<ul>
<li>이를 자랑하기위해서</li>
</ul>
<blockquote>
<p>신라 적성비와 창녕 척경비,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 등의 비석</p>
</blockquote>
</li>
</ul>
<hr>
<p>한편 나,제 연합군에게 한강을 상실한 고구려는 지배충의 분열로 <strong>국정이 혼란</strong>해졌다. 고구려에 우호적이던 <strong>북위가 멸망하면서 중국과 긴장 관계</strong>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strong>유목 민족인 돌궐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strong>하면서 대외적 위기에 직면</p>
<p>백제는 6세기 <strong>무령왕</strong>과 <strong>성왕</strong>의 노력으로 중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p>
<ul>
<li><strong>무령왕</strong>은 지방에 <strong>22담로</strong>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고, 대외적으로는 <strong>중국 남조의 양과 교류</strong>해서 문물을 수용하고, <strong>친선 관계를 유지</strong>하였다.</li>
<li><strong>성왕</strong>은 수도를 <strong>웅진</strong>에서 대외 진출의 여건이 좋은 <strong>사비</strong>로 옮기고, 국호를 일시적으로 <strong>남부여</strong>로 바꾸었다. 또한 중앙 관청을 22부로 확대하고 지방 제도를 정비해 <strong>수도를 5부로 지방을 5방</strong>으로 하였고 <strong>왜에 불교를 비롯한 선진문물을 전해</strong> 주었다. 성왕은 신라와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유역을 되찾지만 배신당해 한강 유역을 다시 빼았긴다. 이후 복수하려고 성왕이 직접 신라를 공격하지만 <strong>관산성</strong>에서 크게 패하고 <strong>전사한다</strong>.</li>
</ul>
<h2 id="가야의-발전과-쇠망">가야의 발전과 쇠망</h2>
<p>금관가야가 쇠퇴하자 고구려로 부터 피해가 없던<s>존버하던</s> 고령의 <strong>대가야</strong>가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 한다. 대가야는 농업에 유리한 입지 조건과 풍부한 철 산지를 가지고 있었다. 5세기 후반에 크게 성장햐 <strong>소백 산맥 서쪽</strong>까지 세력 범위를 넓힘. 신라에 침입한 고구려를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함.</p>
<p>그러나 가야는 연맹이 <strong>소국이 독림적인 정치 기반</strong>을 유지하였기에 힘을 모을 수 없었다. 백제와 신라에 의해 압박을 받음. 이에 대가야는 신라와 결혼 동맹을 맺어 세력을 유지하려 하지만 532년 금관가야는 신라에 병합되고, 562년 대가야가 신라 진흥왕에 의해 병합되며 가야 연맹은 해체되었다.</p>
<hr>
<h2 id="신분제-사회의-성립">신분제 사회의 성립</h2>
<p>고대 사회에서는 여러 부족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지배층 사이의 위계 서열이 마련되어 점차 <strong>신분 제도</strong>가 확립되었다.<br>
부여, 초기 고구려, 삼한의 읍락에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strong>호민</strong>과 농업에 종사하는 <strong>하호</strong> 그리고 주인에 예속되어 생활하는 <strong>천민</strong>이 있었다. 이는 중앙 집권 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strong>왕족을 포함하는 귀족과 평민 그리고 천민의 신분 구조로 재편</strong>되었다.</p>
<ul>
<li>왕족을 비롯한 부족장 세력들은 중앙위 귀족 신분으로</li>
<li>대부분의 농민들은 평민들로</li>
<li>대부분의 노비들이 천민층이였다</li>
</ul>
<h2 id="삼국의-사회-모습">삼국의 사회 모습</h2>
<p>고구려는 산간 지역에 자리해 식량 생산이 힘들었다. 따라서 <strong>정복 활동</strong>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사회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형법 적용을 엄격히 하였다.<br>
고구려의 지배층은 왕족인 고씨를 비롯하여 5부 출신의 귀족들이 차지하였고 지위를 세습하며 관직을 독점하여 국정을 운영하였다.<br>
백성들은 대부분 자영 농민이였으나 생활이 불안정하여 노비가 되기도 하였다.<br>
고국천왕때는 <strong>진대법</strong>(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는 제도)을 실시하였다.</p>
<p>백제는 일찍부터 중국과 교류하며 선진문화를 수용하였다. 문화적 기품은 씩씩하였고, 형법이 엄하였다.</p>
<p>신라는 초기 부족 사회의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귀족 회의인 <strong>화백 회의</strong>는 이러한 부족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곳에서 국왕을 폐위시키거나 새로운 국왕을 추대하기도 하였다. 또한 혈연에 따라서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strong>골품제</strong>가 있었다. 신라에는 원시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기원한 <strong>화랑도</strong>조직이 있었다’.</p>
<h2 id="삼국의-경제-정책과-경제-생활">삼국의 경제 정책과 경제 생활</h2>
<p>삼국의 재산의 정도에 따라 호를 나누어 곡물과 포를 조세로 거두었으며, 그 지역의 특산물은 공물 형태로 수취하였다. 노동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15세 이상의 남자를 동원하였다. 농사철에는 부역을 금지하고 우경이 확대되었다.</p>
<p>삼국시대의 수공업과 상업 및 무력 활동은 주로 왕실과 지배층의 필요 물품을 조달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p>
<p>신라에서 5세기 말 금성(경주)에서 <strong>시장</strong>이 열렸고, 6세기에는 감독관청인 <strong>동신전</strong>이 설치 되었다.</p>
<h1 id="통일-신라와-발해의-발전과-사회-모습">통일 신라와 발해의 발전과 사회 모습</h1>
<h2 id="세기-말7세기경-동북아시아의-전세">6세기 말~7세기경 동북아시아의 전세</h2>
<p>6세기 중반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중국과 직접 교류하면서 <strong>삼국 항쟁의 주도권을 차지</strong> 하였다. 이에 백제는 고구려 및 왜와 교류를 강화하며 신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하였다. 한편 고구려 역시 중국에게 압박을 받아 돌궐과 연합한다.<br>
그리하여 6세기 말 이후 동북아시아에는 <strong>고구려, 백제, 왜, 돌궐</strong>로 이루어지는 <strong>남북 연합 세력</strong>과 <strong>신라와 수,댱</strong>을 <strong>동서 연합</strong> 세력이 대립하였다.</p>
<h2 id="고구려와-수-당과의-전쟁">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h2>
<p>중국을 통일한 수는 주변으로 세력을 넓히며 <strong>고구려에 복속을 요구</strong>했다. 이에 고구려는 좆까라 하고 <strong>요서지방을 먼저 공격</strong>하였다. 이에 수 문제는 <strong>30만 대군을 보내 고구려를 공격</strong>하지만 <strong>성과 없이 돌아갔다</strong>.</p>
<p>뒤를 있는 <strong>수 양제</strong>는 직접 113만의<s>아마 구라일 거임</s>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공격하나 실패함. 그리고 퇴각하는 군대를 <strong>살수 대첩</strong>으로 물리침. 이후 수나라는 <strong>무리한 전쟁과 토목 공사로 좆땠다</strong>.</p>
<p>수 나라가 멸망하고 <strong>당나라가 중국을 통일</strong>한다. <strong>당 태종</strong>은 처음에는 고구려와 친선 관계였지만, 국내 정치가 안정되자 적극적인 <strong>팽창 정책</strong>을 전개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국경지역에 <strong>천리장성</strong>을 쌓고 군사력을 강화.<br>
이 당시 고구려는 <strong>연개소문</strong>이 즉위하고 있었는데,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해서 이를 구실로 고구려를 공격한다. 645년 당 태종은 랴오허강 일대의 <strong>요동성, 백암성 등</strong>을 차례로 무너뜨린뒤 <strong>안시성</strong>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고구려는 이를 물리쳤고**(안시성 싸움)**. 결국 당은 신라와 편을 먹는다.</p>
<h2 id="나-당-동맹의-체결">나-당 동맹의 체결</h2>
<p>고구려가 수-당이랑 싸울때 백제의 <strong>의자왕</strong>은 신라를 공격했다. 위기를 느낀 신라는 <strong>김춘추</strong>를 고구려에 파견해 도움을 요청하지만 연개소문이 신라가 예전에 먹은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서 결국 협상은 실패. 그래서 김춘추는 당으로 가서 <strong>나-당 동맹</strong>이 성사되었다.</p>
<h2 id="백제-고구려의-멸망과-부흥-운동">백제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 운동</h2>
<p>나-당 연합군은 먼저 <strong>백제를 공격</strong>하였다. 백제는 <strong>기벌포 전투</strong>에서 패하고, 계백의 결사대마서 <strong>황산벌</strong>에서 김유신에게 패함<br>
결국 나-당 연합군은 사비를 함락하고 웅지으로 피신한 의자왕은 항복한다.</p>
<p>남은 것은 고구려 였는데, 연개소문이 살았을때는 잘 막았는데, <strong>연개소문 죽고 개판됨</strong> 그래서 <strong>평양이 함락</strong>되고 보장왕이 항복하며 고구려는 <strong>멸망</strong>하였다.</p>
<p>백제랑 고구려가 둘다 조때고 여러 지역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다.</p>
<ul>
<li>
<p>백제의 왕족인 <strong>복신</strong>과 승려 <strong>도침</strong>은 의자왕의 아들 <strong>부여풍을 왕 으로 추대</strong>하였고, <strong>흑치상지</strong>도 <strong>임존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백제의 부흥을 꾀하였다</strong>.</p>
</li>
<li>
<p>고구려는 <strong>고연무가 오골성에서 부흥 운동을 전개</strong>하였고 <strong>안승의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에 투항해 보덕국을 세움</strong></p>
</li>
</ul>
<h2 id="나-당-전쟁과-신라의-삼국-통일">나-당 전쟁과 신라의 삼국 통일</h2>
<p>당은 백제 고구려 망하가 <strong>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strong>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백제의 옛땅에 <strong>웅진도독부</strong>를 신라의 금성에는 <strong>계림도독부</strong>를 두었다. 근데 신라가 이김… 대동강 이남에서 당을 몰아내고 <strong>삼국통일</strong>을 이루었다.</p>
<p>신라의 삼국통일의</p>
<ul>
<li><strong>한계점</strong>
<ul>
<li>외세인 당을 끌어들였다</li>
<li>대동강 이북의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li>
</ul>
</li>
<li><strong>의의</strong>
<ul>
<li>고구려, 백제의 유민과 함께 당을 몰아내 자주적인 통일을 달성</li>
<li>백제-고구려의 문화와 전통을 수용하고 경제력을 통합하여 민족 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li>
</ul>
</li>
</ul>
<h2 id="무열왕계의-왕위-계승과-왕권의-강화">무열왕계의 왕위 계승과 왕권의 강화</h2>
<p><strong>태종 무열왕</strong>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통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했으며, 이후 그의 직계 자손이 왕위를 세습했다</p>
<p>** 문무왕**은 통일을 마무리한 후 내부 반란을 막고 민생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하였다.</p>
<p><strong>신문왕</strong>은 <strong>김흔돌의 난</strong>을 계기로 진골 귀족 세력 숙청 또한 왕권을 확립했다.</p>
<ul>
<li>중앙 정치 기구와 지방 행정 조직 마련</li>
<li>군사 조직을 정비</li>
<li>국학을 설립 (유학 교육)</li>
<li>관리들에게 관료전 지급</li>
<li>녹읍을 폐지</li>
</ul>
<p>왕권이 강화되며 <strong>6두품</strong> 세력은 왕의 정치적 조언자로서 두각을 나타냄</p>
<h2 id="통일-신라의-통치-조직-정비">통일 신라의 통치 조직 정비</h2>
<p>신라의 중앙 통치 조직은 왕의 직속 기구인 <strong>집사부</strong>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 장관인 <strong>시중</strong>은 왕명을 받들어 국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br>
집사부 아래에는 <strong>13부</strong>를 두어 행정업무를 나누었으며, 감찰 기구인 사정부를 두어 관리들의 비리와 부정을 방지하고자 하였다.</p>
<p>지방 행정 조직은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하였다</p>
<ul>
<li>상수리 제도-- 지방 세력을 견제 (지방의 힘있는 자제를 수도로 오게 해서 반란 같은거를 못하게 함)</li>
<li>외사정 파견</li>
</ul>
<p>군사 조직은 <strong>9서당 10정</strong>을 설치 하였다</p>
<h2 id="신라-말의-사회와-새로운-세력의-성장">신라 말의 사회와 새로운 세력의 성장</h2>
<p>8세기 후반에 이르러 통일 신라는 <strong>진골 귀족 간의 다툼</strong>으로 혼란해졌다.</p>
<ul>
<li>혜공왕 피살</li>
<li>150 년간 왕이 20명</li>
<li>김헌창</li>
<li>장보고</li>
</ul>
<p>그리하여 9세기말 <strong>진성여왕</strong>때 전국각지의 지방민의 봉기가 일어남</p>
<p>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지방에서는 <strong>호족</strong>세력이 성장해서 일정지역에 독립적인 지배권을 행사했다. – 도선의 풍수 지리설</p>
<h2 id="후삼국의-성립">후삼국의 성립</h2>
<p>신라가 혼란하니까 지방에서 성장하던 <strong>견훤과 궁예</strong>는 세력을 모아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br>
<strong>견훤</strong>은 전라도 지역에서 <strong>후백제</strong>를 세웠고 신라왕족 출신 <strong>궁예</strong> 개성에 도읍을 두고 <strong>후고구려</strong>를 세웠다. 궁예는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하지만 <strong>호족을 탄압하고,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해</strong> 반발을 샀다. 그래서 호족들은 정변을 일으켜 <strong>궁예를 몰아내고</strong> 송악의 호족인던 <strong>왕건을 왕으로 추대</strong>하였다.</p>
<h2 id="발해의-성립과-발전">발해의 성립과 발전</h2>
<p>고구려가 망하고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통제 했지만, 틈을 타 <strong>대조영</strong>은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이끌고 지린성의 동모산에서 <strong>발해</strong>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strong>고구려 계승 의식</strong>을 내세웠다.<br>
9세기 초 선왕때 발해는 옛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을 수복하여 <strong>해동성국</strong>이라 불리었다</p>
<h2 id="발해의-통치-체제">발해의 통치 체제</h2>
<p>중앙 정치 조직은 당의 <strong>3성 6부</strong>를 받아들였지만 운영 방식은 <strong>독자적이였다</strong><br>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되었다.<br>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두어 왕궁과 수도의 경비를 맡겼다.</p>
<h2 id="통일-신라의-사회">통일 신라의 사회</h2>
<p>신라는 통일 전쟁 과정에서 <strong>민족 융합 정책</strong>을 추진했다.</p>
<ul>
<li>9개 주를 편성할때도 신라 고구려 백제의 옛땅에 3개씩 주를 할애 하였다</li>
<li>중앙군 9서당에는 신라인 &amp; 말갈인 &amp; 고구려인 &amp; 백제인</li>
</ul>
<h2 id="통일-신라의-경제-정책">통일 신라의 경제 정책</h2>
<p>귀족들에게 지급하는 <strong>식읍을 제한</strong> 하고, <strong>관료전</strong>을 지급하면서 녹읍을 폐지.<br>
백성들에게는 <strong>정전</strong>을 지급하였다</p>
<ul>
<li>따라서 귀족들의 농민 지배력이 약화 되었다.<br>
그리고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strong>촌락 문서</strong>를 작성하였다</li>
</ul>
<h2 id="통일-신라의-상업과-무역">통일 신라의 상업과 무역</h2>
<p>당나라, 왜, 발해와 교역을 하였다<br>
9세기 장보고의 <strong>청해진</strong>은 신라-당-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거점을 완성하였다<br>
무역항으로는 <strong>울산항, 청해진, 영암, 당항성</strong>이 그게 번성하였다, 특히 <strong>울산항</strong>에는 이슬람 상인까지 들어와 무역하였다.</p>
<ul>
<li>신라방 신라촌, 신라소 신라관등이 만들어짐</li>
</ul>
<h2 id="발해의-사회-모습">발해의 사회 모습</h2>
<p>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으로 구성된다.<br>
발해의 핵심 지배층은 <strong>고구려인</strong>이였으며 이들이 중요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strong>지방 촌락</strong>은 토착 세력인 <strong>말갈인이 다스리게 하였다</strong>.<br>
결론: 짬뽕 문화</p>
<h2 id="발해의-경제-발달">발해의 경제 발달</h2>
<p>9세기 발해는 경제적으로도 성장했다. 농업은 밭농사 중심 수공업 발달</p>
<p>발해는 당, 신라,거란, 일본등과 무역을 하였는데 활발했음 ㅇㅇ</p>
<h1 id="고대-국가의-국제-교류와-문화-발전">고대 국가의 국제 교류와 문화 발전</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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