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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s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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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미래를 넘어 창의적인 해방으로

"만약에 원하시는 게 이뤄진 뒤에 ㅇㅇ 님의 모습은 어떨 것 같으세요?"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기적처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묘사해보세요."

이런 질문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코치나 상담, 멘토링 같은 일을 하시지 않더라도, 어디서 들어보신 적은 있으실 겁니다.

해결중심단기치료에는 기적 질문이라는 게 있습니다. 꼭 기적 질문이 아니라도, 코치나 상담사는 비슷한 질문을 많이 합니다. 10년 뒤의 꿈을 적으라는 진로 수업 과제를 다들 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결과는 무엇인지. 목표는 무엇인지도 듣습니다.

이런 기적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장점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안 된다", "못 한다"는 식으로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변화할 수 없기에. 잠시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열어주고자 쓰는 질문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내담자를 존중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코치나 멘토가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게 아니라요. 스스로의 욕구와 가치를 따라서 이상적인 삶이나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저는 네카라쿠배 개발자가 되어서. 아침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출근해서. 동료 분들과 리액트 최신 기술을 우리 프로젝트에 어떻게 적용할지 밤 늦게까지 토론을 하고. 저희가 만든 제품이 고객에게 사랑 받고 회사는 성공하고..."

그러면 이런 성공한 미래에서 시작해서, 거꾸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저기까지 갈 수 있는지 하나하나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뭔가 가능해 보이지 않나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상투적이고 익숙한 세계에 가두고 빙빙 돌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공이라는 환상에 걸려 비틀거리다

프로그래머 코칭을 하면서 목표에 대해 들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취직을 하고 싶다로 시작해서. 취직을 하고 나면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다로 수렴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좀 궁금한 게 생깁니다. 정말 취직을 하고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면 우리는 만족스러울까요?

성공보다는 변화가, 변화만큼이나 비교가 우리를 짓누른다

대니얼 길버트라는 심리학자는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라는 책에서, 우리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게 왜 위험한지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자가 되고 좋은 차, 큰 집에 살면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연구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가난하거나, 너무 열악한 집에 사는 사람은 물론 불행합니다만. 최소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은 더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이사를 하는 등 '변화'가 있을 때에는 영향이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쉽게 적응하고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연구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연봉 8천만원까지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연구를 가져오며. 돈이 역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반박을 합니다. 역시 돈이 최고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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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소득과 주관적 삶의 만족도 관계 분석 강은택 교수 2015년 대한부동산학회지

연구가 말해주는 바는 다릅니다. 해당 논문을 찾아보면 "가장 중요한 변수인 삶의 만족도는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로, ‘매우만족’부터 ‘매우 불만족’까지 다섯 가지의 척도로 조사되고 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프에서는 0점에서 0.7점이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도는 0이라는 걸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 평균이 2.3점이라면 8천 8백만원을 벌때 평균이 3.0점이 되고 거기서 멈춘다는 것입니다. 소득 외에도 이혼 여부나, 취업 여부, 전세 vs 월세 여부, 건강 등의 영향도 보았는데. 이러한 요인들은 소득보다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시 말해 결혼 생활이 평탄하고 건강한 저소득자가 이혼하고 몸이 아픈 고소득자보다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절대적인 수준이 전부인 것도 아닙니다. 해당 연구를 한 강은택 교수는 부동산 학자입니다. 해당 연구는 지역 간의 비교 연구도 하였는데요.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에서의 한 단위 소득 증가는 소득수준이 높은지역에서의 한 단위 소득증가보다 삶의 만족도 증가가 더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돈을 더 벌어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데.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돈을 더 벌면 더 많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연구는 돈이 전부라는게 아닙니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효과는 한계가 있고, 그마저도 돈이 많아져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져서라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는 인프라도 부족하고 돈을 쓸 곳도 부족할텐데 말이죠!

한편 행복이 절대적인 돈의 양이 문제라면, 실질 임금이 상승하면서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어야 할 겁니다. 실질 임금이라 함은, 물가 대비 임금 수준이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 것보다 임금이 많이 올라야 실질 임금이 오릅니다.

우리나라가 많이 성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2000년대 초 1500원 정도이던 최저임금은 이제 1만원에 가깝게 올랐습니다. 한국은 과거보다 정말 부유해졌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고 우울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7~80년대가 좋았다고까지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연봉이 전부가 아닌 것도 있지만. 우리는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작년과 올해를. 다른 사람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지요.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변화"에 예민합니다. 예를 들어 2천만원을 받다가 3천만원을 받으면 정말 기쁘겠죠. 하지만 1억을 받다가 1억 1천만원을 받아도 그 정도로 기쁠까요? 하물며 연봉이 동결된다면 더 끔찍하겠죠.

10년 동안 임금이 2배로 오르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실질임금이 10년이 지나도 20%조차 오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실질임금이 마이너스를 찍는 전례 없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고요. 우리나라는 1998년 경제위기 이후로도 1인당 GDP가 2배 가까이 올랐음에도, 실질임금은 그만큼 잘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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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사회 연구소 [이슈페이퍼 2019-07] 한국의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

또 사회가 모두 성장하더라도, 나의 상대적인 수준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객관적인 소득 수준보다, 주관적인 소득 수준이 사람들의 행복을 더 잘 예측합니다. 한편으로는 가난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부자 동네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보다 더 행복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1억을 벌더라도 2억 버는 사람 옆에 있으면, 5천만원을 벌어도 3천만원 버는 사람 옆에 있는 경우보다 우울하다는 거죠.

이러한 연구는 구체적인 경험으로도 쉽게 납득이 갑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방 2칸짜리 집에서 7명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서 그런 게 가난임을 잘 몰랐어요. 뭐를 사주지 않거나 그런 게 당시에는 슬플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학교에 가고 나서 이런저런 이유로 왕따를 당했습니다. "컨테이너에 산다며?" 저는 컨테이너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억울했고,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은 제가 가난하다는 걸 트집 잡은 것이죠. 어쩌다 친구의 집에 가니 번듯하고 화려한 아파트에, 친구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우울했던 이유는 가난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장애인이 힘든 것이 장애 때문이 아니라, 장애를 보는 시선과 장애인 접근성을 생각하지 않는 사회 때문인 것처럼요. 애초에 부자가 되면 행복하다는 게 사실이라고 한들. 그러니까 나도 남들과 경쟁해서 부자가 되자는 게 해결책일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가난하면 고통 받게 하는 사회 자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삶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코칭의 목표를 이뤄도, 왜 우리는 여전히 다음 목표를 찾는가

더 큰 문제는 이 비교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코칭을 하면서 보면 정말 다양한 단계에서, 다양한 경제 수준을 가지신 분들이 옵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우울하고 힘들어 하신다는 건데요. 어떤 분이 목표로 하는 성공한 삶을 살고 계신 분조차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은 뒤떨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코칭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목표를 이루게 도와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원하던 대로 취직을 하고. 더 좋다는 네카라쿠배로 이직을 합니다. 여기 갈 수 있을까? 희망하던 곳에 가시기도 합니다. 성공한 학원처럼 현수막을 붙여도 될 정도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코칭 카카오 n명 합격!"

비전공자는 전공자를 부러워합니다만. 전공자들은 비전공자인데도 자기보다 잘 하는 사람들이나 서울대 컴공과를 나온 분들을 보고 질투를 느낍니다. 서울대 컴공과를 나온 분은 주변 친구들은 다들 어디 CTO나 뭐를 달고 있는데 자기는 평범한 것에 열등감을 느낍니다. 취준생 분들은 누가 취업을 하면 부러워하지만.

그 취업하신 분은 정작 별로인 회사에서 힘들어하며 이직을 생각합니다.

꿈에 그리던 유튜브에도 나온 스타트업에 취직하신 분은 어려운 회사 사정에 찍어내기 급급한 개발을 하며 3천만원 대 연봉을 받습니다.

네카라쿠배에 이직하신 분들은 야근과 불합리한 의사결정구조에 고통 받다가, 회사의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정리해고 위협을 받고. "리팩토링은 지옥에 가서 하라"며 꿈꾸던 진지한 개발을 포기하게 됩니다.

대니얼 길버트는 우리가 현실보다는 막연한 환상에 기반해서 미래를 생각함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한쪽 면만 보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목표로 삼지만. 결국 우리가 목표로 했던 "성공"은 허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코치로서 이런 목표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어떻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성공을 위해 달려가게 만들지만 고민한 건 아닐까요?


당연하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우리는 노력하고 성공?해도 해결되지 않는, 빙빙 도는 틀 밖으로 나가야 할 것 입니다.

  • 우리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인지왜곡"을 알아차리고
  • 단순 반영을 넘어서 우리가 원하고 추구하는 "욕구와 가치"을 탐색하고
  • 서로 모순되는 역할과 가치들 사이에 "양가감정"을 바라보고
  • "창의적으로 모순을 해결"하고 나아갈 방법을 찾고 연습하며
  • 지금 여기의 나와 세상을 "수용하고 머무르는" 법을 배우며
  • 단기적으로 하는 일이 장기적으로도 도움이되는 "조화로운 선순환"을 만들고
  • 개인을 넘어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해방으로 나아가기

...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도 할 말이 많습니다. 또 뵙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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